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노르망디의 한국인 (문단 편집) == 행로 == 이들이 누구이며, 또한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는데 이들의 최후에 대해 앰브로스 등은 "아마 한국으로 돌아가서 [[한국전쟁]]을 치렀을 것이다." 라고 하고 있으며 어떤 사람들은 다시 소련으로 끌려가 처형당했다고 주장한다. 소설가 조정래의 소설 <오 하느님>이 이 주장을 따른다. 만일 위의 테크가 사실일 시 더 운이 없었으면 북한군으로 참전했다 귀순해서 월남전 테크 타고 상이용사나 일반 참전용사로 운 좋게 제대하는 거였을 게 아마도 보통이었을지도 모른다. 공산권 붕괴 후 공개된 소련 문서에 따르면 이런 대량처형은 일종의 잘못된 속설이었고 대부분 노동을 위해 [[굴라크]]로 이송되었다. 그중 협력사실이 경미한 전직 포로들은 다시 군에 들어가는 것이 허가되었고 대부분 노동부대나 굴라그 경비병으로 차출되었다. 처형된 비율은 의외로 적고 실제 [[전범]]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맞는 비율이다.[* 만약 처형되었거나 전사한 이들, 소식을 알 수 없는 소수의 이들이 있다면 아마 운 없는 이들의 경우 진짜 답도 없는 루트가 나오는 케이스는 하필 2차 대전 종전 이전에 '''발트 3국으로 옮겨간 고려인들'''인데, 저 위의 한국인 독일군 병들은 그나마 보장된 포로 신분이 몇몇 있었겠지만 발트 3국은 유대인으로 분류당한 사람들만 아니면 독소전쟁 발발 이후부터는 너도나도 외인부대 징집행이었는데 아마 발트3국에서 무국적 상태로 표류중인 고려인들 역시 갈 길을 잃은 채로 무장친위대 측 징집대상이 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. 아마도 재수 없는 경우, 에스토니아, 라트비아와 리투아니아 기준 5 SS기갑사단 비킹 쪽이나 20 무장척탄병사단 쪽으로 입대했다 전사하여 소식이 끊기고 아무에게도 관심을 받지 못했던 이들도 소수 있을 수 있다는 것. 추측에 불과할 뿐이긴 하나 사실일 경우면 정말로 그들 역시 안타깝기 그지없다.] 또 어떤 이들은 그들이 [[미국]]에 남아 여생을 지내 [[1992년]]에 일리노이주에서 사망했을 거라고 추측한다. 북토피아에서 전자책으로 출간된 [[장웅진]]의 <노르망디의 조선인>이라는 소설이 이 주장을 따른다[[http://www.ohmynews.com/NWS_Web/View/at_pg.aspx?CNTN_CD=A0000401612|#]]. 일단은 이런 사람들이 5~10명 정도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. [[http://forum.axishistory.com/viewtopic.php?t=82819|이 페이지]]를 보면 조선인 출신으로 추정되는 4명의 사진이 있다. 그 밖에도 투르크계 병사들의 사진도 보인다. 연합국은 [[소련군]] 전향 포로와 [[러시아 혁명]] 이전부터 망명한 코사크계, 백계 러시아인들을 [[소련]]에 다시 넘긴 사례도 있었다. 특히 동방대대 포로들의 경우에는 [[동유럽]]에서 [[소련군]]의 보호하에 있던 자국 포로들의 안전확보를 위해 국제조약도 무시한 경향이 있다. 사실상 [[소련군]] 전향 포로에 대해서 2가지 사례가 모두 공존한다고 보면 된다. 어찌보면 역사의 거대한 물결에서 기구한 삶을 산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. 비슷한 사례로 [[일본군]]에서 [[팔로군]], [[북한군]]을 거쳐 다시 [[한국군]]에 복무한 할아버지도 있다[[http://www.munhwa.com/news/view.html?no=2009062401073527258002&w=nv|#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